세계대전은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음악은 전쟁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음악 산업과 음악 스타일에 영향을 미쳤으며,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음악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본 글에서는 세계대전이 음악에 미친 영향을 네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1. 음악의 선전 도구화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음악은 선전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각국 정부는 전쟁을 정당화하고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애국적인 노래를 제작하고 보급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는 *"It's a Long Way to Tipperary"*와 같은 군가가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했다. 이 곡은 원래 잉글랜드의 작곡가이자 가수였던 Jack Judge가 1912년 작곡했으며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이 나치 선전에 음악을 적극 활용하였고, 미국에서는 프랭크 시나트라 등의 가수가 전쟁 지원을 위한 노래를 발표하며 국민들을 독려하였다. 프랭크 시나트의 주요 곡에는 "I'll Be Seeing You" (1944), "Saturday Night (Is the Loneliest Night of the Week)" (1944), "White Christmas" (1944, 커버곡) 등들이 있는데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들의 마음과 연인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감정 등을 위로하는 노래들이었다.
2. 음악 산업의 변화
전쟁 기간 경제적 어려움과 물자 부족으로 인해 음악 산업도 변화를 겪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전쟁으로 인해 공연이 줄어들었고, 유럽의 많은 음악가들이 전쟁에 징집되면서 음악 활동이 위축되었다. 전통적인 오페라와 극장 공연이 축소되었고 애국적인 군가나 대중가요가 부각되었다. 그러나 라디오와 축음기 기술이 발전하면서 음악은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에게 전달되어 라디오와 축음기가 대중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빅 밴드 재즈와 스윙 음악이 미국에서 유행하였으며, 전쟁 이후 재즈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또한, 군인들을 위한 위문 공연(USO Show)도 활성화되면서 프랭크 시나트와 빙 크로스비 같은 가수들이 군인들을 위해 노래했다.
3. 음악적 스타일과 주제의 변화
전쟁은 음악의 스타일과 주제에도 영향을 주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클래식 음악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표현한 작품들이 등장했으며, 쉰베르크와 같은 작곡가들은 불협화음을 강조하는 표현주의 음악을 발전시켰다. 쉰베르크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 동안에 '6개의 작은 피아노곡(Op. 19, 1911)', '전쟁 시가(Op. 41, 1942)' 등을 작곡했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유대인의 생존을 위한 모세(Op. 46, 1947)', '바이블 송(Op. 50, 1949~50)' 등이 있다. 이후에는 다른 장르인 재즈와 블루스가 더욱 발전하며 자유와 희망을 상징하는 음악이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전쟁 후 로큰롤이 등장하면서 젊은이들의 문화가 새롭게 형성되었다. 이처럼 전쟁은 음악의 주제를 보다 현실적이고 강렬하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4. 음악의 치유적 역할
전쟁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음악은 그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에 큰 도움을 주었다. 전쟁 중에는 음악이 선전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군인들과 국민들의 정신과 마음의 안정을 위해 위로가 되는 음악이 되기도 하였다. 베를린에서는 클래식 음악 연주가 계속되었으며, 미국에서는 팝송과 재즈가 위로의 역할을 했다. 전후에는 전쟁의 아픔을 반영한 곡들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에게 공감과 치유를 제공했다. 예를 들어, 전후 프랑스에서는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Chanson) "La Vie en Rose"가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세상이 마치 장밋빛처럼 아름답게 보인다는 내용으로서 희망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